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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23 10:04
거칠고 단순해도 생명의 소중함 듬뿍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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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단순해도 생명의 소중함 듬뿍

 

한겨레 2012. 11. 22

 

 

 

 

 

 

[매거진 esc] 요리
자연요리 전문가 문성희씨가 추천하는 몸에 좋은 채소도시락 4선

시인 기형도의 미발표 시에는 유난히 ‘겨울’이 많이 등장한다. ‘겨울, 눈, 나무, 숲’, ‘우리는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걸어갔다’ 등. 긴 시 제목에 매서운 ‘겨울’이 있다. 지난 18일 충북 괴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겨울’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추수가 끝난 들녘은 을씨년스럽다. 기형도의 ‘겨울’이 괴산을 뒤덮고 있었다.

 

      자연요리 전문가 문성희씨

 

심장까지 쪼그라뜨렸던 겨울은 괴산 미루마을에 들어서자 온데간데없어졌다. 봄 햇살만큼 따스한 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연요리 전문가 문성희(62·사진)씨 때문이다. 그가 환한 미소로 맞는다. 젊은 시절 부산에서 요리학원을 운영했던 그는 20여년간 온통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고 만들고 가르치는” 데 소비했다. 1990년대 말 돌연 부산 철마산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자연요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훌륭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래의 생명력”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 내린 결정이었다. 산에서 캔 나물을 먹고 직접 손바느질을 해 옷을 만들어 입었다. “슬프고 분노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죠. 자연식을 한 후부터 몸이 달라졌어요.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어요. 생명의 소중함도 느끼고 나 자신도 존중할 수 있게 되었죠.” 한참 옛이야기를 풀어놓은 뒤에야 그의 이야기는 본론으로 접어들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채소 도시락 4가지. 외식에 지친 이들 사이에서 도시락은 인기다.

놀이하듯 즐기며 먹도록 한
자녀 위한 영양도시락
누룽지처럼 구워 치즈도 살짝

먼저 ‘고소하고 달콤한 사랑의 도시락’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5분도쌀’로 만든 밥은 누룽지처럼 살짝 구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즈도 발랐다. 우엉조림은 우엉을 아주 얇게 채 썰어 아이들이 쉽게 집어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너무 낯설면 아예 접근을 안 해요. 엄마가 만든 자연식도 멋있네, 맛도 좋네 하는 생각이 들게 구성했어요.” 밥은 오독오독 씹는 재미가 으뜸이다. 먹는 내내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든다.

‘가볍고 따뜻한 도시락’은 요즘 비만을 걱정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각종 채소들 위에는 눈송이보다 부드러운 생곡물가루가 뿌려졌다. 햇볕과 바람 속에 건조시킨 현미, 보리, 율무, 들깨, 참깨 등 17가지 곡물을 빻은 가루다. “섬유질이 많아요. 노폐물 배설에 좋죠. 꾸준히 먹으면 피부색이 달라져요.” 아삭아삭한 채소의 식감과 곡물가루는 입안을 즐겁게 한다. 숲이 통째로 입안에 들어와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소화가 잘되고 든든한 정성의 도시락’은 노인들을 위한 밥상이다. 밥은 거칠지 않다. 불린 찹쌀을 사용해 쫄깃하다. 밥 사이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밤과 은행은 마지막 가을을 선물하는 듯하다. 도토리묵전이나 무전은 이가 없어도 먹겠다 싶다. 각종 쌈도 있다. “어르신들은 입맛이 토속적이죠. 소화가 잘되고, 해독이나 순환에 좋은 재료로 만들었어요.”

‘누구나 도시락’은 외모 가꾸기보다는 건강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반할 만한 도시락이다. “영양이 골고루, 푸짐하게 들어가게 했죠.” 겉껍질만 벗긴 밤, 껍질째인 고구마가 밥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다.

‘비만 걱정’ 직장여성에겐
각종 채소에 생곡물가루 솔솔
입안 가득 자연의 소리

문씨가 채소도시락 만들 때의 주의점을 알려줬다. “꼼꼼한 손질이 필요해요. 가공은 많이 할 필요 없어요. 조리과정은 짧고 단순해야 하고 단계도 적어야 합니다. 샐러드는 드레싱을 활용하는 게 참 좋죠.” 그의 요리법은 5단계가 넘지 않는다. 껍질, 씨앗, 뿌리도 버리지 않는다. “껍질에는 생명을 보호하는 힘이 있고, 씨앗은 생명의 원천이고, 뿌리는 생명이 성장하는 힘입니다.” 그의 음식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사찰음식과 닮았지만 부각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만들지 않는 특징이 있다. 36시간 안에 요리해서 먹는 것도 그의 음식의 특징이다.

지금 그는 괴산 미루마을에서 ‘평화가 깃든 밥상 살림푸드 연구소’을 운영한다. 지난해 8월부터다. 이 연구소에서는 자연음식을 연구하고 그 내용을 강의한다. 그의 강의는 요리법만 있지 않다. 생태문화답사나 단식캠프도 강좌 내용이다. 효소를 담그고 국수를 삶고 나물을 무치는 과정과 나란히 진행된다. “음식을 다루는 데 요리법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요리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1, 2, 3기 합쳐 현재 20여명이 다녀갔다. 이들에게는 ‘살림푸드 마스터’란 이름이 달린다. ‘살림푸드’는 문씨가 자신의 요리에 단 이름이다. ‘(몸을) 살린다’는 뜻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