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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0-31 14:07
나의 채식 연대기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961   추천 : 0  

나의 채식 연대기


한창 자전거에 빠져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산으로 들로 대지의 바람을 한껏 가르며 쏘다니다 돌아오면 몸에선 기분좋은 풀냄새, 흙냄새가 묻어났습니다. 그 무렵쯤부터 자연스럽게 차 기름냄새나 매연, 고기냄새, 아스팔트냄새 등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육식을 과하게 좋아하거나 자주 먹을만큼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여유가 있지는 않아 ‘채식하겠다’라는 선언보다는 ‘되도록 육식을 하지 않아야 겠다’라는 소박한 다짐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그 다짐의 계기를 조금 더 보태자면 오랫동안 우리 가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소들이 있었습니다. 착한 소의 눈망울과 목덜미에 손을 얹었을 때의 따뜻한 온기, 애처러움이 배여 있는 저음의 울음소리까지. 내 어린 시절의 정서를 공유하고 지금까지도 줄 곳 우리 가족의 삶과 함께하고 있는 소들에게 과도한 육식으로 인해 자행되고 있는 공장식 사육시스템과 무자비하고 비위생적인 도축행위 등은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기위한 작은 다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고기안먹기’ 다짐은 정작 나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더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친구들과 식사를 하거나 회식자리, 모임 뒷풀이 자리에서 이런 소심한 나의 커밍아웃?으로 매번 음식메뉴를 고를 때마다 나름 골치 꺼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내가 겪게 되는 어려움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고기안먹기’ 수준이고, 진짜 채식주의자, 완전 채식을 하는 분들에게 그런 나의 어려움이란 아주 작은 투정에 불과한 일이라 차라리 작은 불편보다는 이로 인해 생기는 즐거운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음식을 찬찬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양이 어떤가 냄새가 어떤가 뿐만 아니라 이 음식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어디서 왔나 등을 살피기 위해 음식을 바라보게 된 것이죠.


몹시 허기진 상황에서도 잠시 욕구를 멈추고 바라본다는 사실은 저에겐 상당히 기분 좋은 변화였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줄어드니 식사도 좀 더 소박하고 천천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생각도 좀 더 여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얼굴빛이 좋아졌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점점 젊어지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물론 모든 원인을 채식에서 찾을 수는 없겠지만 긍정적인 감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하면 으레 ‘채식주의자에요?’라고 묻습니다.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채식’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낯설고 쑥스러워 ‘고기를 안먹습니다’라고만 이야기합니다. 아직까지는 무슨 무슨 주의, 혹은 주의자라는 말보다는 채식으로 인해 조금은 소박하고 느린 시선으로 먹거리를, 삶을, 세상을 바라보는 ‘고기 안먹는 삶’을 즐겁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신예정/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광주용봉점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