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자국-지구 환경과 문명의 역사
앤터니 페나 지음, 황보영조 옮김/삼천리·2만6000원

한겨레 2013. 4. 12
아프리카에서 나와 아시아와 유럽으로 퍼져 나가던 4만년 전 수렵채취인은 60대까지 산 사람이 열에 하나가 채 되지 않을 만큼 거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우리보다 키가 컸다. 뼈도 튼튼하고 평생 충치 없이 살았다. 위험한 사냥의 스트레스와 부상, 출산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늘날의 운동선수처럼 강했다. 이에 견줘 농경사회에 접어든 뒤 18세기만 해도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영양실조 상태였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수렵채취의 삶을 버렸을까. 그것은 인류가 1만2500~1만1600년 전 ‘영거 드라이아스’기라는 혹독하게 추웠던 시기에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후변화는 적어도 산업화 이전 수만년 동안 인류 역사를 좌우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로마제국의 몰락, 몽골의 침입, 마야문명의 흥망도 모두 기후변화와 직결돼 있다.
최근 지질학계가 홀로세를 세분해 1850년대 이후를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부르자고 합의한 데는, 지구를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한 인류 문명에 대한 자성이 깔려 있다.
지구온난화와 대규모 생물 멸종 등 인류는 단일 생물종이면서 지구 차원의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환경 세계사를 알아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를 떠나 인류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편견 없이 되돌아보는 역사가의 안목이 절실해진 것이다.
앤터니 페나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 명예교수의 <인류의 발자국>은 2008년 번역 출간된 맥닐의 <20세기 환경의 역사>(에코리브르)와 함께 자연사와 인류의 사회경제사를 환경이란 관점에서 꿴 대표적 책이다.
이 책이 다루는 영역은 지구의 탄생에서 자동차의 보급까지 넓지만, 지구의 환경변화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인류는 또 환경에 얼마나 큰 발자국을 남겼는지를 한결같이 살펴본다.
17~18세기 대중 소비재가 된 설탕, 담배, 커피는 노동자뿐 아니라 자연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값비싼 사치품에서 출발해, 공급 과잉, 가격 하락, 소비 대중화 수순을 거쳐 생산과 소비의 세계화를 일찌감치 이뤘다. 이 기호품 때문에 열대우림 파괴, 노예에게 줄 값싼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 대구 어획, 선박 제조와 철도 부설 등으로 인한 환경 훼손이 뒤따랐다.
말을 자동차가 대체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1900년 유럽 도시에 300만마리 이상이 있던 말은 배설물과 파리, 악취 등의 주범이었다. 자동차는 이런 도시의 불결함을 말끔히 가셔줄 것으로 기대됐지만 뒤이을 자동차 사고, 배기가스로 인한 악취와 소음 등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지은이는 기후변화를 다룬 마지막 장에서 “기후변화는 갑자기 온다”고 강조했다. 빙하기가 끝난 지 10년 만에 그린란드의 기온이 5~10도 올라갔다. 또 간빙기가 시작된 뒤 6000년 동안 따뜻하고 습한 기후가 북아프리카를 지배해 사하라는 악어와 하마가 서식하는 늪과 비옥한 평원이었지만 갑작스런 한랭기와 함께 불과 수십년 사이에 차고 건조한 기후가 닥쳐왔다. 7500년 전 사하라의 목축문명은 붕괴하고 사람들은 나일강 유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후변화를 우리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