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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6 12:15
나도 효리처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04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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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악하는 뉴욕의 시민들. 다큐 <증인>의 한 장면.
ⓒ TribeofHe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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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밖으로 뛰쳐나가 아무나 붙들고 저것 좀 봐달라고, 그러면 내가 왜 이러는지 알게 될 거라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죠. 주류 매스컴은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잖아요. 그래서 내 나름대로 알릴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벤 자동차를 영상차량으로 개조했죠."

한겨울 저녁 미국 뉴욕의 번화가. 행인들의 시선이 길가에 주차된 에디의 밴으로 향한다. 벤에 장착된 스크린을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 더는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감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모피반대' 캠페인을 접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런 캠페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부 동물애호가들의 유별난 행동으로 여기고 무심하게 지나치곤 한다. 모피를 얻는 참혹한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도살 직전,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우의 눈이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름다운 모피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니면 너희는 우리보다 하등하니까 그렇게 죽어도 된다고 대답해야 할까.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한없이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패션'이라며 동물의 털가죽을 저리도 처참하게 빼앗는 광경을 목격할 때 특히 그렇다. 동물의 모피를 벗기면서 사람은 자신의 '인간다움'도 함께 벗어던진다. 빼앗기는 쪽이나 빼앗는 쪽이나 참담해지기는 마찬가지다.

모피를 구매할 생각이 있다면, 게다가 그 추악한 진실을 단 한 번이라도 눈으로 목격했다면, 자신에게 한 번쯤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굳이 저런 고통을 입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나라도...'를 선택한 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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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차량으로 개조한 벤 자동차 앞에서 에디가 사람들에게 모피의 잔혹한 진실에 대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다큐 <증인>의 한 장면.
ⓒ TribeofHear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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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증인>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에디는 원래 동물을 싫어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좋아하는 여성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잠시 맡은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에디의 관심은 고양이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동물을 한낱 생산 '기계'로 간주하는 현대 산업의 비정한 시스템을 목격하고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고 채식주의자가 됐다. 그렇게 일상에서 줄일 수 있는 고통부터 줄이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고통받고 죽어가는 동물이 생겨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고통과 죽음이 적어도 '나' 때문은 아니도록 해야 합니다."

에디는 혼자만의 실천에 만족하지도 않았다. 개조한 벤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가 동물들의 비참한 현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런 현실의 '증인'이 돼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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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도'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이효리. SBS <힐링캠프>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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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 명의 증인이 있다. 가수 이효리는 2012년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해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오늘날 과도한 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동물이 공장식으로 사육되고 큰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그래서 지나친 육식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라도'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는 흔하다. 현실 비판에 열을 올리면서도 실천은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왜 굳이 내가…"라며, "나 하나의 실천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발뺌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효리의 실천은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나 지식이라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약자에 대한 이효리의 증언은 동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손해배상·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가족을 돕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 모금운동은 이효리의 동참과 함께 사회운동으로 확산됐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평범한 주부의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됐다.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둔 배춘환씨는 아래의 편지에 4만7000원을 담아 <시사IN>에 보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 원을 손해 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보냅니다. 47억 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 명이면 되더라고요. 나머지 9만9999명 분은 제가 또 틈틈이 보내드리든가 다른 9만9999명이 계시길 희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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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천7백만 원도 모으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함께 출발했지만, 16일 만에 4억7천만 원 달성, 18일 만에 다시 4억7천만 원을 달성한 '노란봉투 캠페인'. 현재 3차 모금이 진행 중이다. 개미스폰서 공식 페이지 갈무리.
ⓒ 개미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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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주부의 편지 한 통이 기적을 일구어냈다. 강인규는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오마이북)에 이렇게 썼다.

"사회 변화는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대선이나 총선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하루에도 개개인이 수백 번식 반복하는 일상의 선택에 달려 있다. 예컨대 험한 도로를 달려 고층아파트 거실까지 음식을 날라주는 배달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든지, 생존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다.(중략)

'한두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거짓말이다. 사실은 '한두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이 세상을 바꿀 수 없게 만든다.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기에 한두 명의 개인이 바뀌면 그 사회는 그 몫만큼 바뀌게 된다. 나 혼자만 바뀌어도 세상은 한 사람만큼 바뀌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관계망 속에 살고 있기에 나의 변화는 항상 주변의 변화를 몰고 온다."

생각은 세계적으로, 실천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같은 보통의 직장인은 커피값이라도 줄이는 실천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불필요한 소비항목을 하나만이라도 줄여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소한 실천이 우리 사회를 그만큼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동물을 돕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봉사를 하거나 동물보호단체에 후원하는 것만이 동물을 돕는 행동은 아니다. 따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하루 세 번'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채식이다. 채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희생되는 동물도 줄어든다. 메뉴를 고르고 식료품을 구입하는 매 순간이 동물을 돕는 기회다.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보자. 채식이 어렵다면 햄버거만이라도 먹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얽매이지도 말자. 대신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실천하자. 실천하면 할수록 '나 하나의 몫만큼' 동물의 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이렇게 평생 실천하면 그 어떤 동물보호 캠페인보다 많은 동물을 구할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연재기사에서 밝혔듯이 오늘날 공장식 축산은 동물은 물론 사람과 지구에도 고통을 주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소비자들이 '싼 가격에 많이' 먹으려는 욕심부터 내려놔야 한다. 공장식 사육을 지탱하는 것은 '절제를 모르는 욕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 변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각자의 일상에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실천은 제도 변화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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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식 축산 반대 공장식 축산폐기와 복지축산 전면도입을 촉구하는 동물사랑실천협회 회원. AI를 비롯한 농장전염병이 터질 때마다 방역과 살처분으로 대응하는 건 한계가 있다. 현재의 공장식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창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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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을 들어주십시오. 중립은 압제자를 돕지 절대로 희생자를 돕지 않습니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결코 괴롭힘을 당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지 않습니다." (엘리 위젤, 1986년 노벨상 수상 연설 중)

멜라니 조이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노순옥 역·모멘토)에서 "증언은 어느 한쪽을 편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규모의 폭력 앞에서 중립을 고수하는 것은 결국 가해자의 편을 드는 셈"이라고 지적하면서 "도덕적 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디스 하먼의 말을 언급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 원을 손해 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보냅니다."

배춘환씨의 말을 음미해본다. 그녀는 작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해고 노동자들의 고통을 증언했다. 그리고 이러한 증언은 이효리를 비롯한 무수한 증인들을 탄생시켰다. 

이기적으로 생각해도 결론은 같다. '나 혼자 행복한 세상'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세상 역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내어야' 할 곳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동물들을 위해 '나라도' 실천해보자. 세상은 '나 하나의 몫만큼' 바뀔 것이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